[G.O.D School SEMT] 터키 7일차 이스탄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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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사학교 작성일14-03-01 23:59 조회6,039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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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6일 (수)요일입니다.
안녕하세요? 안태웅기자입니다. 오늘은 제대로 이스탄불을 탐구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었나요? 오늘은 이스탄불의 모든 것을 공개하는 일정을 취재하게 되어 큰 영광이며 정말 보람된 하루였습니다.
저희가 첫번째로 간 곳은 그랜드 바자르입니다. 그랜드 바자르는 터키어로 ‘카파르 차르시’로 ‘ 지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입니다. 그랜드 바자르는 예전 대부분의 시장과 달리 이 시장에는 지붕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메머드 2세가 각지에서 모인 상인과 시민들이 안심하고 물건을 거래 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각 상점에는 상점 번호가 붙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40분의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랜드 바자르는 양탄자가게가 많았고 옷, 가방, 도자기, 골동품에서 먹는 로콤까지 정말 다양하게 팔고 있었고 규모가 너무 커서 디코선생님께서 우리들이 살 수 있는 곳이 많은 곳으로 이동하여 자유시간을 주었습니다. 저도 선물을 사기위해 많은 장소를 돌아 다녔지만 가격이 비싸고 흥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사지 못하고 우리조는 조금 일찍 모임장소에 모였는데 바로 앞에 미리온 조원들이 몰려 있어서 가보았습니다. 그 곳에서는 “로콤”이라는 터키전통젤리를 팔고 있었고 가격도 싸면서 먹어보고 고를 수 있어서 저도 몇 개를 먹어 보니 너무 맛있어서 선물로 3가지 맛을 샀습니다. 먹어보고 사니 왠지 뿌듯했고 다른 아이들도 좋아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로콤을 먹으며 골목 골목길을 걸으며 길가에 조그만한 구멍가게 같은 집앞에 멈춰서더니 모두들 그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집은 바로 이스탄불에 지하 물 궁전인 “예레바탄 사라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하더니... ‘와우~ 지하에 이런 신전같은 궁전이 있다니...; 저는 정말 너무 놀랐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보았던 신전기둥이 땅을 받치며 그 밑에는 아주 맑은 물이 있었고 그 맑은 물에는 엄청나게 큰 고기와 여러종류의 고기들이 아주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예레바탄 사라이는 코린트 양식으로 된 336개의 웅장한 기둥이 땅을 받치고 있는데, 세로 140m, 가로 70m, 높이 8m에 달하여 축구장보다 훨씬 크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하 궁전에 저장할 수 있는 물은 8만t이나 되는데, 이스탄불에서 19km나 떨어진 벨그라드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로마 토목 기술의 꽃으로 불리는 수도교를 통해서 운반하였는데 지금도 이스탄불 구도심에는 물을 운반했던 수도교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레바탄 사라이의 끝에 가면 이곳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가운데 하나인 메두사의 얼굴을 한 개는 거꾸로 한 개는 옆으로 누여 기둥의 받침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신화에 대한 믿음과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한 상태여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그 당시 이 곳을 설계했던 사람이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괴물 메두사도 하나님앞에서는 기둥을 받치는 쓸모없는 괴물뿐이라는 생각을 주려고 이렇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유일신이신 우리 하나님 한분밖에 없는데... 우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여러 가지 미디어를 사랑한다면 미디어를 아주 낮은 곳 쓸모없는 곳에 버려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시 지상으로 나왔습니다. 정말 옛날 사람들은 지금의 사람보다 더 지혜로웠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골목과 큰길을 10여분 걸어 가서 광장 같은 벤치에 앉아서 쉬었습니다. 그리고 가이드 선생님이 나눠주시는 개인별 무선 수신기를 받고 잠시 쉬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저는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방금 예레바탄 사라이에서도 놀라고 왔는데 제 옆에는 아름다운 성 소피아성당이 웅장하며 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저는 감탄할 시간도 없이 우리 조를 이끌고 성 소피아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성 소피아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 위대한 예술적 가치는 모자이크, 대리석 기둥, 돔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명령으로 세워진 유명한 돔은 비잔틴 건축의 전형으로 여겨지며 ‘건축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찬사를 듣고 있으며 1520년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Seville Cathedral)이 완성되기 전까지 약 1000년 동안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 정교회 창설의 중심지이었으며 비잔틴 제국 황제의 의식이 치러지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고 그리스 정교회, 로마 카톨릭, 무슬림 등의 건축물과 의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이 곳은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로 불리며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신성한 지혜(Holy Wisdom)’를 의미합니다. 1453년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콘스탄티노플 대성당(cathedral of Constantinople)이었지만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던 1453년 5월 29일부터 1931년 까지는 이슬람의 모스크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외부에 공개되어 사람들이 볼 수 있지만 이슬람교는 하기아 소피아성당을 가만 두지 않았고 중요한 곳은 파괴하고 벽화들은 회칠로 많은 부분이 사라졌고 내부 곳곳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글들과 표시를 하였고 천장에도 이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바꾸어 놓았습니다.
내부는 정말 신전에서 가져온 기둥으로 모든 기둥을 세웠고 둥근 곳에 천장은 기독교의 모자이크나 벽화들이 이슬람의 아랍어로 무언가 쓰여있는 걸로 덮여 있었고 조명과 글자들이 모스크처럼 되어있어 기분이 나쁘면서 예수님의 관한 벽화들이 회칠로 덮여 있어서 화가났지만 참았습니다. 정말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현 시대의 최고의 성당이며 기독교의 중요한 요새였을 거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도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들어올때도 몇사람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듯이 이슬람땅의 모스크를 모스크로만 이용하지 왜 공개를 하느냐고 시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많은 이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반면에 우리 기독교인들과 많은 전세계의 사람들은 기독교의 유물이니 원형을 보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야한다는 입장으로 이 성당은 이슬람교와 기독교 대립이 가장 큰 곳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 G.O.D School은 그 곳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 소피아성당을 주님을 예배하는 교회로 바꾸어 주시옵소서”라고 나도 간절히 기도하며 내부의 벽화들을 보며 기도하며 성당을 나왔습니다.
정말 마음이 너무 아팠고 우리 사사들이 열심히 하나님 더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하나가 되어 빨리 이 세계를 하나님의 땅으로 드려야 겠다는 결심을 하며 나와서 다시한번 웅장한 하기아 소피아성당을 보며 기도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듣던중 반가운 소리인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이스탄불에는 한식당이 3개정도 있는데 우리가 마치 한식당 탐방을 하듯이 오늘 마지막 남은 한 곳의 한식당을 찾아서 맛있는 닭도리탕과 마파두부, 된장국을 맛있게 먹고 든든한 배를 만지며 씩씩하게 한발, 한발 움직이며 우리는 토프카프 궁전으로 향했다.
보스포루스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고 이지역을 방어하려다 보니 이 언덕에는 과거에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토프카프'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토프'는 '대포'라는 의미이고, '카프'는 문이라는 의미이며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이 새로 지워질 때까지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토프카프 궁전을 관람하면서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고 정말 사치스러움에 놀랐습니다. 또한 오스만제국이 얼마나 막강했기에 세계 수많은 나라들이 보물들을 오스만제국에게 바쳤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강대했던 제국이 망한 것을 보면 정말 당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의 어떤 역사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아무리 강대한 제국이라도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오스만 제국은 다른 나라들이 보석과 돈, 곡식들을 바치지 않으면 군대를 이끌로 그 나라로 쳐들어가서 나라를 멸망 시켰다고 합니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역대 술탄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면 오스만 제국의 위엄을 알 수 있습니다. 토프카프 궁전을 나오면서 나 자신부터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고 하루 빨리 전 세계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소망하며 토프카프 궁전을 크게 밟으며 나왔습니다. 마음 한편이 뭔가 허전하며 다시 이스탄불의 하늘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덧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디곳은 디포드롬 광장이라고 합니다.
히포드롬은 전차경주에 사용되던 경기장을 뜻하며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에 의해 지어진 검투장이였는데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가 금지되고 말이 끄는 마차 경기로 변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경기장도 없어지고 아무런 건물도 없이 광장으로 변했고
광장에는 부러진 뱀기둥과 이집트에서 가져온 탑만 남겨져 있었습니다.
광장에 유적들은 십자군의 침입으로 파괴 되었고, 콘스탄티누스 기념탑에 있던 보석을 가져가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히포드롬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가가 하루에 5번씩 기도를 하는 이슬람의 오후기도가 4시에 마치기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갈 곳 불루모스크(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3시 30분, 아직 30분이 남아서 디코선생님의 남은 이슬람의 이모저모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슬람은 여자를 우습게 여기며 터키는 많이 좋아 졌고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는 2000년이 넘어서야 여자도 주민등록증을 발급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에 사는 기가센 여자들이 이 곳에 와서 회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하하하) 그래서 모스크에도 여자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곳은 제일 뒤쪽에 정해진 구역에서만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하셨고 이슬람의 다섯 기둥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다섯기둥을 세우고 또 하루에 5번 시간을 정해서 기도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정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하나님을 향한 나의 5가지의 큰 계획을 세우고 하루에 5번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도록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되어 모스크로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블루모스크(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라고 하며 터키를 대표하는 모스크이며, 모스크의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있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드 1세가 1609년에 짓기 시작하여 1616년에 완공했습니다. 우뚝 서 있는 첨탑 6개는 다른곳의 1~4개보다 많아 술탄의 권력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이 모스크는 술탄 아흐메드가 오스만제국에서 아름다운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보며 더 아름답고 웅장한 모스크를 지으라고 명했다고 하며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도중 모든 사람들은 비닐에다 신발을 넣어서 맨발로 가야하고 역시 여자들은 머리에 히잡(이슬람교에서 여자들이 머리를 보자기나 스카프로 가리는 것)을 써야 한다고 해서 모든 관광객들도 히잡을 쓰고 모스크로 들어갔습니다. 역시나 크기는 웅장했지만 웅장한 천장에서 위험하게 엄청나게 큰 조명들이 우리 머리위까지 있어 위험해 보였고 하기아 소피아 성당 천장에서 보았던 문양들을 여기서도 볼 수 있었고 뒷부분에는 여자들만 들어가는 경계선이 있었습니다. 카페트는 사람들이 줄을 맞춰 기도 할 수 있도록 줄이 그어져 있있고 중간에는 10명정도 따로 기도하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디코선생님이 강의 할 때 모스크에는 우리 교회처럼 목사님이 없고 그 마을이나 모스크에 연장자 중에서 코란(이슬람교에서 우리 기독교에 성경과 같은 책)을 많이 알고 읽은 사람을 “이맘”으로 지정하여 하루 5번의 기도를 인도하고 가끔 설교같은 강연을 한다고 하셨는데 오늘 마침 “이맘”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고 있어서 신기하면서도 이 곳이 교회이고 이맘이 목사이고 저들이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신자였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기도가 나왔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사리더,빌더들이 기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슬람의 실체와 모스크의 실체를 알고 모스크를 나왔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모스크를 나왔는데 나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히잡을 써야하는데 후드티의 모자나 잠바의 모자를 써도 되어서 여자3명외에는 다 모자를 썼습니다. 하지만 3명은 히잡을 쓰고 나와서 모두들 웃으며 모스크를 나올 수 있었지만 우리들의 마음 한 곳에 무거운짐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 오는 길에 디코선생님이 오늘 8시에 13층으로 모이라는 소식을 듣고 방으로와서 책자를 정리하고 8시가 되어 13층으로 갔습니다.
13층은 카페 같은 곳인데 회의 테이블처럼 사각형으로 둘러 앉아 있었고 디코선생님의 책상 앞에서 잔잔한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이 잔잔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교장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과 지금 디코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였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터키의 일정을 돌아보며 터키땅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땅이 이슬람의 땅이 된 것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기도를 드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Go On Doing하여 오늘의 발걸음을 기억하며 열심히 하나님의 사사로서 준비하여 모두 하나가되어 이 땅과 이 세계를 하나님께 드릴 사사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눈물을 흘리며 하루를 마쳤습니다. 오늘 함께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내일의 사사의 행진은 더욱 씩씩하게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 이스탄불에서 안태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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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은님의 댓글
정예은 작성일다음은 저네요.........
안태웅님의 댓글
안태웅힘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