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송 SEMT] 가온누리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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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사학교 작성일14-12-08 21:01 조회6,0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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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매년 최대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낭만의 도시ㅡ 프랑스 파리 리포터를 맞게 된 신진 사사빌더입니다! ^^

저희 가온누리는 몇몇 친구들이 아직 대학교 면접이 남아 있는 연유로 1팀, 2팀, 3팀으로 나누어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세 팀이 모두 극적으로 만난 곳이 바로 이곳, 오늘의 시작 장소인 루브르 박물관이었습니다. 각설은 생략하고 세계 3대 박뮬관 중 하나인 루브르 박뮬관에 전시된 유명한 작품들의 액기스를 함께 쭉 보시죠.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람세스, 이집트의 문화재도 많이 소장되어 있더군요.
매우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그러나 생각보다 밋밋한 느낌이었고 아이들도 이 그림이 왜 그렇게 가치가 있는지 의아해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유명하다니까 카메라를 들고 이 앞에서 붐비지 않았을까요?^^
역시 유명한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런데 내일 갈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것이 진품이라네요
머리와 팔 그리고 발이 잘렸지만 승리를 상징하는 여신 니케. 나이키로 유명하죠.
어때요, 재학생 여러분들은 지난 주 함께 졸음을 이겨가며 목사님의 특강을 들었던 터라 아는 작품이 몇 개 있으시죠? ^^ 우리가 1단계 감상법(?)으로 이름을 붙였던 ‘그만해요’
(혹은 날 두고 싸우지 마요)작품을 비롯하여 아버지와 남편이 전쟁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을 그린 그림, 나폴레옹 대관식, 모나리자는 모두들 기억나실 겁니다. 세계사를 배우는 친구들은 7월 혁명을 그린 들라쿠아의 민즁울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눈에 들어오고, 바벨로니아의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도 아실 거구요. 정말 말로만 듣던 세계의 걸작들이 헤레브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발에 치이도록’ 많았습니다.
(혹은 날 두고 싸우지 마요)작품을 비롯하여 아버지와 남편이 전쟁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을 그린 그림, 나폴레옹 대관식, 모나리자는 모두들 기억나실 겁니다. 세계사를 배우는 친구들은 7월 혁명을 그린 들라쿠아의 민즁울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눈에 들어오고, 바벨로니아의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도 아실 거구요. 정말 말로만 듣던 세계의 걸작들이 헤레브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발에 치이도록’ 많았습니다.
모든 유럽 셈트의 장소가 그렇겠지만, 특별히 이 루브르 박물관은 사진과 짧은 글에 다 담을 수 없습니다. 총 3층과 지하를 다 걷는것만 해도 15키로 이상이 걸린다니,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를 짐작할 수 있으신가요?
목사님이 말씀하시길, 이 박물관을 한 번에 다 보겠다는 것은 욕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여러 번 오셨는데도 아직 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고 하셨습니다. 올 때마다 자신은 욕심내지 않고 제대로 볼 것 몇 개, 훑어볼 것 몇 개를 정하시고 나머지는 남겨 두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루브르에서 깡통머리이면서도 어떻게든 작품을 많이만 눈에 담으려고 고생했던 저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고 급급했던 제 모습과 비교해서 목사님께서는 참 평온하고 ‘사람다워’ 보이셨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동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못 하는 것을 분별하시고 박물관을 돌아다니신다는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닮고 싶었습니다.
하나라도 더 알려고 급급했던 제 모습과 비교해서 목사님께서는 참 평온하고 ‘사람다워’ 보이셨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동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못 하는 것을 분별하시고 박물관을 돌아다니신다는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닮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는 루브르처럼 무조건 ‘유럽 왔으니까 많이 보아야지’ 욕심 내지 말고 포기할 것은 포기할 줄 알고 그 대가로 얻은 시간과 여유를 누리는 셈트가 되어야겠습니다. ^^
다음으로는 조별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평범한 식당에서 메인 요리 하나씩과 셀러드바를 먹었는데, 분위기도 좋고 친구들과의 기쁜 재회와 친절한 외국인들과의 대화도 참 좋았습니다. (사진이 없어 죄송합니다 ㅠㅠ)
점심 식사 후,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의 몽마르뜨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좁은 골목에 예술가들이 옹기종기 사는 듯한, 마지막 잎새의 배경이 되는 듯한 언덕이었습니다,
목사님꼐서 예전에 비해 그 예술성이 많이 훼손되었고 이제는 상업적 지구처럼 되어버린 현장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실로 화가들은 몇 되지 않았고, 예술가의 언덕이라는 느낌도 매우 옅었습니다.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의 몽마르뜨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좁은 골목에 예술가들이 옹기종기 사는 듯한, 마지막 잎새의 배경이 되는 듯한 언덕이었습니다,
목사님꼐서 예전에 비해 그 예술성이 많이 훼손되었고 이제는 상업적 지구처럼 되어버린 현장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실로 화가들은 몇 되지 않았고, 예술가의 언덕이라는 느낌도 매우 옅었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위에 있는 ‘마카롱’이라는 계란 흰자와 설탕으로 만든 과자의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너무 달다고 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다양한 맛과 예쁜 색깔에 비싼 가격이지만 많이들 사 먹었습니다.
특별히 저는 여기서 한 늙은 화가분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분의 유화 그림을 감상하고 있자, 뒤에서 오셔서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냥 몇몇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45일째 이곳에서 친구들과 있으시며 상상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얼굴의 반 이상을 덮은 흰 수염과 덤블도어의 안경과 비슷한 무테안경, 그리고 깊은 눈에서는 예술성과 깊은 고뇌와 슬픔을 조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 성격이 온순하셨다는 것만 뺴면 마지막 잎새를 그린 그 할아버지 주인공을 닮았다고 해야 하나요? ^^
사르트르 성당이라고 착각했던 사르쾨르 성당이라는 파리 시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 지은 성당을 잠시 들려 우리 일행은 개선문으로 향했습니다. 프랑스의 혁명이 낳은 사생이라고도 평가받고, 세계에 프랑스의 자유주의를 확산시킨 인뮬이라고도 평가받는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위에서 개선문을 내려다보면, 12개의 도로가 마치 별과 같은 모양으로 모아지는데 이 모양이 별과 같아서 에투알(프랑스 어로 별이라는 뜻) 광장이라고 불립니다. 안타깝게도 위에 올라가보진 못했습니다. 이 개선문은 로마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을 본뜻 것인데, 로마 시대부터 개선문 아래로 행진하도록 허락한 자는 영웅 뿐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2차 세계 대전 때 활약했으며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드골 장군이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유럽 셈트에서 우리의 건강과 모든 것을 챙기시고 이끌어주시는 우리의 선생님 영웅들의 사진을 담아 봤습니다.^^
다음은 프랑스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라고 자부하는, 파리 시내 최대 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습니다. 아마 여자 친구들이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을 텐데, 저는 그렇게 큰 감명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디스플레이가 참 화려해서 사람들을 유혹하게끔 구상했을법하다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날이 저물어갈 때쯤, 우리가 가장 푹 빠졌던 에펠탑에 도달했습니다.
19년 동안 말로만 들었던 에펠탑을 직접 보자 모두 흥분했었고,
실제로 밤에 빛나는 에펠탑은 참 멋스럽고 예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19년 동안 말로만 들었던 에펠탑을 직접 보자 모두 흥분했었고,
실제로 밤에 빛나는 에펠탑은 참 멋스럽고 예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파리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 에펠탑도, 처음에는 모파상과 같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의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술의 거리 파리에서 이런 고철덩어리가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이죠. 이 이야기를 들으며 사회변화의 어려움과 기득권층의 반발 그리고 그것이 자리 잡는 과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참고로 루브르 박물관의 입구인 유리 피라미드도 같은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지만 지금은 이제 파리의 기득권층(?) 문화에 속하게 된 에펠탑의 멋에 한껏 취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는 파리의 한강인 센 강을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는 순서였습니다.
위쪽에는 건축학과에 진학하게 되어 아마 파리의 여러 건축물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 예찬이, 아래는 사진을 어찌나 많이 찍는지 ‘셀카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아마 우리 중에 파리를 가장 잘 누린 진하의 모습입니다. ㅋㅋ
위쪽에는 건축학과에 진학하게 되어 아마 파리의 여러 건축물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 예찬이, 아래는 사진을 어찌나 많이 찍는지 ‘셀카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아마 우리 중에 파리를 가장 잘 누린 진하의 모습입니다. ㅋㅋ
센 강을 건너며 우리는 오늘 둘러보았고 내일 만날 여러 파리의 명소들을 볼 수 이었습니다.
파리에서 첫날을 보낸 우리 가온누리. 모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은 유럽이 몰락하고 있으며 어떻게 그것을 껴안을 것이냐는 큰 주제를 던져 주셨는데 우리는 아마 조금씩 모두 파리의 낭만과 이상 뒤에 숨은 깨어짐을 느꼈을 겁니다. 파리의 로망이 더러운 거리 및 지하철과 노숙자, 턱없이 비싼 물가, 입에 맞지 않은 음식 세 가지로 인해 깨졌다는 여자애들의 말이 기억에 남는군요. 아마 더 깊은 경험은 내일 더 많은 파리 사람들을 만나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밤에 침대에 눕자 파리에 있다는 실감이 나면서 이렇게 좋은 곳에 보내주신 부모님들과 사사학교에 남아 있는 선생님들이 생각나며 참 감사합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고 우리의 밤이 그쪽의 낮이겠지만, 그래도 굿나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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